04/08/2026
엄인정 작가의 작업은 PTSD 진단 이후 경험한 심리적 외상의 신체화와, 이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인지적 거리두기(Decentering) 사이의 괴리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외상 이후 생존자가 경험하는 여러 층위의 분절(Fragmentation)에 주목합니다. 몸과 의식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스스로에 대한 감각은 낯설어지며 타인과 세상을 향한 믿음 역시 이전과 같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외상은 ‘일상이 무너진다’는 추상적인 표현을 넘어 한 사람의 세계를 이루는 통합된 질서가 깨어지는 사건입니다.
작가는 머리 혹은 몸을 상실한 형상, 끝내 완성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형태, 이름을 잃은 존재들을 단단한 금속판 위에 새기고 반복적으로 찍어냅니다. 《몸》에서 시작해 《허물》, 《머리들》로 이어지는 조각들은 하나의 완전한 인체가 되지 못한 채 몸과 의식 사이, 무너진 질서들의 틈을 진동하며 외상 이후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반복은 어제의 고통이 생존자의 오늘에 남기는 물질적 영향력을 기록하는 수행인 동시에, 오늘날 인간을 사회와 구조를 통해 이해하려는 시선 속에서도 끝내 설명되지 않는 몸의 감각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