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2025
Yunghun Yoo: Union Station
기간: 2025-11-01 ~ 2025-12-20
장소/주소: 839 Gallery, 839 N Cherokee Ave, Los Angeles, CA 90038
윤형훈(Yunghun Yoo)의 작업을 이해하는 일은 한 명의 회화 작가를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대 회화가 도시, 이동, 기억, 그리고 정체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읽는 일에 가깝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남가주에서 성장했고, 현재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중의 문화적 배경은 그의 작품에서 직접적인 표상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장소에 대한 감각과 이동의 경험, 소속과 이탈의 긴장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윤형훈의 교육 배경은 비교적 명확하게 공개되어 있다. 그는 UCLA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이후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MFA 과정을 마쳤다. 영문학을 공부한 이력은 그의 회화를 단순한 시각 이미지가 아니라, 서사와 구조, 여백과 연결의 문제로 다루게 만든 중요한 토대다. 그의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과 장면 사이에 공백을 남기고, 관객이 그 사이를 스스로 메우도록 유도한다. 회화는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여러 문단이 느슨하게 이어진 텍스트처럼 작동한다.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의 작업은 그의 회화 세계를 개념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은 이론과 철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으며, 윤형훈의 MFA 논문 전시는 Heterotopia Americana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공간, 공공성과 사적인 감정이 동시에 작동하는 장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 시기에 분명해진다. 미셸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그의 작업을 해석하는 데 유효한 틀로 자주 언급되며, 이는 외부 비평의 과잉 해석이라기보다 그의 전시 맥락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이번 개인전 Union Station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가장 응축된 형태로 드러난 전시다. 전시 제목은 LA의 대표적인 교통 허브인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가져왔지만, 이는 특정 장소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기차역은 늘 이동과 정지, 만남과 이별, 공공성과 고립이 동시에 발생하는 공간이다. 윤형훈은 이 장소를 풍경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레일의 경로, 플랫폼의 구조, 이동의 흔적을 점과 선, 색면과 리듬으로 해체해 화면 위에 다시 배치한다. 그의 그림은 지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추상 회화처럼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기억의 파편이 겹쳐진 장면처럼 읽힌다.
형식적으로 그의 회화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 있다. 명확한 인물이나 사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완전히 비구상으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화면에는 늘 어딘가였던 장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구조물의 일부, 이동 경로의 암시, 공간의 윤곽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장소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장소는 끝내 특정되지 않는다. 이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분명 실제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형태는 흐려지고 감각만 남은 상태다.
색채 역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화면의 긴장과 균형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대비는 분명하지만 과잉되지 않으며, 색은 공간을 분할하고 시선의 흐름과 이동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그의 회화는 감정의 분출이라기보다 사고의 지도에 가깝다.
윤형훈의 작업은 필립 거스턴, 게오르그 바젤리츠, 니콜 아이젠먼처럼 회화를 심리적·정치적·서사적 장으로 확장해온 작가들의 계보와도 이어진다. 그는 회화를 보기 좋은 이미지로 완결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약간 불완전하고, 정리가 덜 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미완의 상태가 동시대적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 전시가 열리는 839 Gallery라는 공간 역시 중요하다. 839 Gallery는 2024년에 문을 연 아티스트-런 홈 갤러리로, 상업적 대형 갤러리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이곳은 단기적인 판매 성과보다 작가와의 장기적 관계를 중시하며, 소수의 작가를 신중하게 선택해 반복적인 전시와 지속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공동 창립자들은 모두 작가이자 교육자, 큐레이터로서 아티스트의 자율성과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이런 성격의 공간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것은 단순한 전시 기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갤러리가 윤형훈을 단발성 신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함께 성장할 작가로 판단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대형 갤러리의 화려한 데뷔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동료 작가들과 커뮤니티로부터 진심 어린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다. 특히 emerging 혹은 mid-career 단계의 작가에게 839 Gallery에서의 개인전은 실험과 집중이 허용되는 드문 기회다.
Union Station 전시는 윤형훈이 LA라는 도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가장 자유롭고 깊이 있게 보여준다. 유니언 스테이션은 LA에서 드물게 역사와 집단적 기억이 응축된 장소이며, 이민과 노동, 확장의 서사가 겹쳐진 공간이다. 윤형훈은 이 복합적인 장소성을 하나의 메시지로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해체해 화면 위에 흩뿌리고, 관객이 스스로 연결하도록 남겨둔다.
정리하자면, 윤형훈의 회화는 도시를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그는 도시가 만들어내는 감각, 이동의 리듬, 장소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회화로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빠르게 소비하기보다는, 오래 바라볼수록 구조와 질문이 드러난다. 그리고 839 Gallery에서의 이번 개인전은, 그 질문이 이제 막 본격적으로 공적 공간에서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신중하게 주목할 만한 전시다.